[국민일보_김도연 소장] ‘이별범죄’, 남남 되자 님이 돌변… 가해→협박→합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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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1-07-19 09:36 조회 1,37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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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시 만나 주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 같이 죽자. … 너는 그 아집 때문에 나한테 당하는 거야. 하늘에서 만나자.” 지난해 1월 서울의 한 건물에서 50대 여성 B씨를 무참히 살해한 60대 남성 A씨는 범행 전 일기장에 원망과 집착이 가득한 글을 남겼다. A씨는 교제한 지 몇 달 안 돼 B씨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회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종용하고, 아예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A씨의 집착에 B씨는 그동안 받은 선물 등을 돌려주며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A씨는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끝은 참혹한 범죄였다.
데이트 폭력 중에서도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일어나는 이별범죄는 폭행, 스토킹에 심지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이별범죄는 한때 연인이었다는 관계의 특수성에 더욱 위험성이 크고 신고조차 어렵지만, 현행법·제도하에서 이를 별도로 다룰 수단조차 없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별범죄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별범죄는 어떻게 일어나고 법적으로 해결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법원판결서열람서비스에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별’이란 표현이 들어간 판결문을 찾았다. 49건의 판결은 경범죄처벌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살인 등 다양한 죄명을 담고 있지만 시작은 하나같이 이별 통보다.
이별 통보가 상해·폭행 등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 사건은 49건 중 17건(34.7%)을 차지했다. 강제추행, 강간 등 성폭력이 일어난 경우는 11건(22.4%)이었다.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이 함께 발생한 사례도 6건이나 됐다.
49건 중 23건(46.9%)에서 이별 통보 이후 다시 만나 달라며 피해자를 괴롭히는 스토킹 범죄가 일어났다. 가해자들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교제 당시 촬영한 성관계 영상물이나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49건 중 26건에서 협박 사례가 등장했다. 이별 통보는 때로 살인도 불렀다. 살인 및 살인 미수는 49건 중 4건(8%)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까지 살해한 가해자도 있었다.
이별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 가해자는 49건 중 4건에 불과했다. 전 여자친구가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남성의 나체사진을 유포하거나, 바람둥이로 몰고 간 사건들이다. 이별범죄에 적용된 처벌규정은 평균 2.4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여러 유형의 범죄를 복합적으로 저질렀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성인식이나 사랑에 대한 개념 없이 상대방을 소유물로 여기는 왜곡된 감정이 범행 형태로 발현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별범죄 가해자 대부분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 이성을 하나의 주체로 보지 않고, 이별 요구를 자신에 대한 전체 부정이라고 받아들여 적대감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별 통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기애성, 편집성, 반사회적 성격이 우세하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실제 상담사례에서 일부 가해자는 심지어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잘해줬는데 상대방이 이별을 통보해서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상대방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고방식, ‘네까짓 게 뭔데. 나의 뜻에 반하냐’ 식의 태도가 발현되는 것”이라며 “단념을 못 하는 거다”라고 했다.
왜곡된 인식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로 볼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별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훨씬 쉽게 범죄로 향할 수 있다. 가해자들은 연인으로 지내며 알게 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피해자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과 공포가 증폭된다.
실제 판결문 분석 결과 49건 중 34건(69%)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아는 공간에서 발생했다. 피해자의 주거지·직장이 18건, 가해자의 주거지·차량이 16건이었다.
‘내 모든 것을 아는 이’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그 공포는 더욱 크다. 신고도, 처벌도 어려워지는 이유다. 실제 신고 이후 2차 피해가 속출하는 사례도 많다. 김현아 변호사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그래도 연인이었는데 처벌까지 해서 전과자로 만들 것이냐’는 식으로 설득해 피해자가 힘든 경우도 많다. 계좌번호 등을 공유한 경우도 있어 돈을 입금한 뒤 합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 협박, 끈질긴 합의 요구에 지쳐 합의하거나 처벌불원서에 서명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가벼운 처벌로 이어졌다. 분석한 49건 판례 중 3건은 강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모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판결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이별범죄를 예방하거나 강력히 대처할 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헤어진 연인이 주거지나 직장까지 찾아와 괴롭히더라도 경찰이 접근금지명령을 내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가정폭력특별법은 혼인과 사실혼 관계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체계에서 ‘이별범죄’ 실태를 들여다볼 통계조차 따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오는 10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처벌법)’이 발효되지만 이 역시 스토킹 피해자에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반의사불벌’ 조항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민우 기자, 김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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